자랑스런 오뚝이기업인

알림마당

민간주도형 재도전 지원 플랫폼!! 재도전사관학교

자랑스런 오뚝이기업인

모든 문제는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깨달음 (주)향천 김영만 대표

작성자 : 작성일 : 21-12-14

본문

모든 문제는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깨달음

(주)향천 김영만 대표


1.PNG?type=w2 


남다른 누룽지 사랑으로 한 우물만 파,

그의 삶은 드라마틱했다

사업 아이템을 선정할 때에는 가장 잘 알거나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애착이 있어야 한다는 것. 누룽지 가공식품을 생산하는 ㈜향천 김영만 대표는 남다른 ‘누룽지’사랑으로 몇 차례의 실패와 오랜 노력 끝에 지금은 인정받는 사업가로 거듭났다. 지난 2015년 5월 베트남 하노이 및 중국 광저우에서 개최된‘해외 바이어 초청 수출상담회’현장에서 베트남 현지 기업 인티 포엠 아 그리 테크 베트남사와 계약을 체결하는 등 지역 가공식품 660만 달러 수출 성과를 거두었다.

아이템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한 우물만 판 결과다.


한국식 재료 사용해 현대 감각에 맞게

재해석한 숭늉 차

㈜향천에서 제조하는 누룽지 가공식품은 쉽게 말해 숭늉차다. 뜨거운 물을 붓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누른 밥을 낱알 형태로 스틱형 포장 지에 담아낸다. 한국 고유의 식재료를 사용해 현대 감각에 맞게 재해석해 낸 새로운 형태의 한국차라 그 의미가 남다르다.

누룽지에 대한 김 대표의 애착은 특별했다.“ 저뿐만 아니라 제 또래 사람들에게 누룽지는 추억의 음식일 것입니다.”김 대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쌀이 비쌌다. 쌀 대신 누룽지 말린 것을 사 와 집에서 푹 끓여 한 끼 밥으로 먹는 경우가 많았다. 김 대표에게 어린 시절 향수가 녹아든 추억의 음식이 바로 누룽지였던 것. 사업 아이템으로 누룽지를 생각한 것은 1990년대 중순이었다.


“친환경 관련 교육을 받았는데, 거기서 환경운동가가 “향후 10년이 지나면 인스턴트 음식이 물러가고 전통식품이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때마침 신문을 봤는데, 쌀이 남아도는 탓에 가축용 사료로 사용하며 1톤에 10만 원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남아도는 쌀을 활용해 누룽지를 만들어 팔아 보자고 생각했다.


연간 30억 원 매출, 누룽지 확산에 기여하다

자금 압박으로 추락

누룽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동화를 위한 기계가 필요했다. 손수연필로 기계를 그려 직접 설계하고 제조했다. 김 대표는 누룽지는 물론 누룽지 제조 기계도 판매했다. 연간 30억 원의 매출을 올렸을 만큼 성과가 좋았다. 김 대표는 현재 시중에 많이 나오는 누룽지를 확산시킨 장본인으로 통한다. “당시만 해도 깔끔하게 포장해 제품으로 생산하는 누룽지 전문 업체는 아마 없었을 겁니다. 새로운 시장이라 개척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요.”비용도 적지 않게 들어갔다. 총 10억 5000만 원가량 투자했다. 무리하게 받은 투자가 나중에는 자금 압박]으로 이어졌다. 그게 지속되자, 5년 동안 공들여 키운 회사는 결국 헐값에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게 됐다.


2.PNG?type=w2


경매만큼은 막아보려 노력했지만 결과는 냉정했다. 김 대표는 신용불량자가 됐고, 고등학생 딸은 자퇴하기에 이른다. 주부였던 아내는 공장에 취직했다.


3.PNG?type=w2 


엎친 데 덮친 격, 친구의 배신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재기를 돕겠다며 찾아왔다. 김 대표 회사의 택배를 담당하던 기사였다. 신용불량자였던 김 대표는 친구의 이름으로

명의를 만들고 작은 사무실을 마련해 2007년 동업을 시작했다. 그동안 영업했던 것이 있어 큰 힘들이지 않고 1년 동안 약 30억 원의 돈을벌어 들였다. 문제는 친구의 배신이었다.


“돈을 벌자 친구는 저 몰래 회사를 팔아버리고 도망갔습니다. 그 일로 소송까지 진행됐어요. 친구는 자신의 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명의를

빌려준 것 자체가 불법이었기 때문에 눈앞에서 고스란히 뺏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2008년 홀로 나왔다. 다른 것은 몰라도 누룽지 관련 서류는 꼭 챙겼다. 특히 택배 보낸 고객 리스트가 정리된 서류는 훗날 재기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수면제 먹었지만 죽지 않고 살아

2008년부터 4년 동안은 거의 폐인처럼 살았다. 

“최악의 상황에서 저를 두 번 죽이는 일이 있었어요.” 경매로 넘긴 공장을 인수한 새로운 사장이누룽지 원산지를 속여 팔다 구속된 것이었다. 매스컴에 난리가 났는데 공교롭게 새 사장과 성이 같았던 김 대표는 지인들에게 오해를 받았다.

“사업을 접은 것을 모르는 지인들이 원산지를 속여 팔았다며 저한테 손가락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사장이 10개월 구치소 생활을 하다가 나왔는데, 또 한 번 더원 산지를 속여 팔아 한차례 더 구속됐지요.”

삶이 의미가 없었다.


“죽어야지 생각했습니다.”

수면제를 많이 먹으면 죽는다는 소리를 떠올렸다. 약국을 돌며 수면제를 사 모았다. 맥주 2병을 사놓고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얼마쯤 지났을까요. 눈이 떠졌습니다. 알고 보니 다음날 아침이었어요. 속만 쓰리더라고요.” 죽음이라는 운명이 그를 비껴갔을까. 죽지 않고 살았다.


‘모든 것은 나에게서 출발’ 감사하는 마음 가져

아침에 일어나 잠이 덜 깬 채로 인터넷에 들어가 검색창에 중소기업청을 치고 사이트에 들어가게 됐었다. 사이트가 열리고 팝업창이 뜨면서 눈에 들어온 게 바로 재도전 중소기업 경영자 힐링캠프]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나를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다. 당장 전화를 걸어 신청했고, 입소 후 180도 바뀌었다. 사고부터가 예전과 달라졌다.


4.PNG?type=w2 


BI, CI 제작해 디자인 입히고 시스템 구축에 주력

이대로 좌절할 수 없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힘을 얻어 2012년 말 사업자등록을 냈다. 사업 개시 후 가장 먼저 한일은 상표디자인에 대한 특허출원이었다. 내 것을 법적으로 보호받기 위해서다. 2013년 6월 우수 중소기업 디자인 지원 사업에 선정돼 1800만 원을 지원받아 BI와 CI를 제작했다. 또 대구 달성군 농업기술센터의 포장재 지원 사업에 선정돼 1000만 원을 지원받아 포장지를 만들었다. 그다음은 시스템을 만드는 것에 주력했다.


“정부에서 주최하는 연구개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벤처기업과 연구소가 있어야 된다고 판단해 연구개발 전담부서를 설립했습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벤처기업 인증을 받고, 식품안전 경영시스템 요구 사항인 ISO22000을 획득했다. 농업기술실용화 재단에서 주최한 2013 농·식품 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농촌진흥청장상을 수상했다. 또 제품의 차별성과 품질을 인정받아 aT 센터에 입점했고, 중소기업

진흥 공단에서 주최하는 HIT500선정에 평가에 참가해 고속도로 휴게소, 인천공항 면세점, 행복한 백화점 등에 입점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그 밖에도 각종 지원 사업에 선정돼 다양한 지원을 받았다.


5.PNG?type=w2


 매출은 2013년 4월부터 일어나기 시작해 9개월간 약 3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2014년 매출은 5억 5000만 원을 달성했다. 올해는10억원을 예상한다. 현재 가라앉지 않는 누룽지 차를 연구 중에 있으며, 누룽지를 이용한 다양한 시도는 계속해볼 생각이다. 시장을 넓히는 것이 이 사업을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6.PNG?type=w2